
주거불안이 빈부격차를 심화시키는 이유: 전세제도의 경제적 역설
전세제도는 한때 한국만의 독특한 주거문화로 세계적으로도 주목받았지만, 최근 들어 전세대란이라는 이름으로 사회 불안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단순한 부동산 가격의 문제를 넘어, 이제는 계층 간 자산 격차 확대, 세대별 불평등 구조 고착화 등 다양한 경제적 불균형의 핵심 요인으로 지목되고 있는 전세제도의 역설에 대해 깊이 있게 살펴보겠습니다.
1. 전세제도의 구조가 만든 자산 양극화: 부의 축적 vs 월세 전환
전세는 본래 집주인에게 큰 목돈을 맡기고, 매달 월세 없이 거주할 수 있는 시스템이었습니다. 이러한 구조는 일종의 ‘무이자 대출’ 형태로, 집주인은 전세금을 활용해 추가 부동산을 구입하거나 금융 수익을 창출하고, 세입자는 월세 부담 없이 자금을 모을 수 있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하지만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고, 전세금이 집값을 따라가지 못하게 되면서 이 시스템은 점점 불안정한 구조로 바뀌고 있습니다.
특히 최근 몇 년간 집값이 급등하면서, 전세금을 마련하는 데 필요한 금액이 과도하게 커졌습니다. 5억, 6억을 넘는 전세금은 이제 중산층에게도 부담이 되는 수준이며, 청년층과 무주택 서민에게는 거의 불가능한 벽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과거에는 전세를 통해 자산을 축적하고 집을 마련하던 구조가, 이제는 월세 시장으로의 이탈과 금융부채 증가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부유한 계층은 다수의 부동산을 보유한 채 전세 수익을 활용하고, 저소득층은 전세 진입조차 어려워지면서 임대료를 매달 지불하는 구조 속에 갇히게 됩니다.
이러한 자산 양극화는 단지 수치상의 차이를 넘어서, 삶의 질과 경제적 기회의 불평등으로 이어집니다. 월세 부담이 커질수록 저축 여력은 줄어들고, 이는 곧 자산 형성의 기회를 박탈하게 됩니다. 반면, 전세 수요 증가에 따라 자산가들은 더 높은 전세가를 요구하며 또 다른 투자처로의 전환을 시도합니다. 전세금이 또다시 부동산 투자 자본으로 활용되는 구조는 ‘부동산이 돈을 만드는 돈줄’로 작용하게 되어 자산가의 수익 구조를 견고하게 만들어주는 반면, 무주택자의 자산 이동은 점점 어려워지는 구조가 완성됩니다.
결국 전세제도는 의도와는 달리 소득계층 간 부의 격차를 고착화시키는 방향으로 변화해가고 있습니다. 자산을 가진 사람에게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하고, 자산이 없는 사람은 월세와 부채에 얽매이는 구조 속에서 부의 사다리는 점차 무너지고 있습니다.
2. 세대 간 자산 형성 격차: 전세 접근성과 청년층의 한계
전세제도가 심화시키는 불평등 구조는 세대 간의 격차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과거 베이비붐 세대와 X세대가 사회에 진입하던 시기는 상대적으로 주택 가격이 저렴했고, 전세금을 통한 주거 안정과 자산 형성이 가능했습니다. 그러나 2020년대에 진입한 MZ세대는 이러한 기회를 상실한 채, 전세금 마련조차 어려운 구조에 놓여 있습니다.
2023년 기준 서울 평균 전세금은 5억 원을 상회하며, 수도권 전체로도 3억 원 이상의 전세금이 필요합니다. 이는 갓 사회에 진입한 청년들이 쉽게 마련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닙니다. 고정적인 소득이 불안정한 플랫폼 노동자나 계약직 근로자는 금융기관에서 대출조차 쉽지 않기 때문에, 사실상 전세 진입 자체가 제한된 상황입니다.
정부는 전세자금대출 제도를 통해 청년과 신혼부부에게 보증금 마련 기회를 제공하려 하고 있으나, 높은 이자와 대출 상환 부담은 또 다른 재무적 압박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특히 기준금리 인상 국면에서는 대출 이자 부담이 더욱 커져, 실질적인 소득 감소 효과까지 불러오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청년층은 자산 형성을 위한 장기 계획 자체를 포기하거나, 아예 주거 수준을 낮춰야만 하는 선택을 하게 됩니다.
반면, 부모 세대의 자산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청년은 전세금을 마련할 수 있으며, 이는 다시 ‘부모찬스’라는 불공정 담론으로 이어집니다. 자산 형성의 기회가 개인의 능력이나 노력보다는, 부모의 경제력에 의해 결정된다는 점에서, 세대 간 불평등은 점점 더 구조화되고 고착화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전세제도는 더 이상 사회적 사다리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으며, 오히려 자산의 세습을 강화하는 시스템으로 변질되고 있습니다. 세대 간 경제적 격차가 지속되는 한, 한국 사회의 전체적인 불평등 문제는 더욱 심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3. 전세시장의 구조적 위험성과 불평등의 장기적 고착화
전세시장은 단지 개인의 주거 문제가 아니라, 한국 경제 전체에 구조적인 위험요소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최근 발생한 깡통전세 사태는 그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부동산 가격 하락과 함께 전세금 반환이 어려워지면서, 세입자들이 전 재산을 날리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이는 자산 형성이 어려운 계층에게 치명적인 손실로 작용하며, 경제적 회복 가능성을 완전히 차단하는 결과를 낳습니다.
깡통전세 문제는 특정 지역이나 연령층의 문제가 아니라, 전세제도의 구조 자체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집값 상승기에 전세금이 집값을 따라 급등하면서, 실제 집값보다 전세금이 더 높은 상황이 다수 발생했습니다. 이러한 과도한 전세금은 임대인이 집을 매각하거나 담보대출을 상환하지 못할 경우, 세입자에게 고스란히 피해로 돌아옵니다. 문제는 이러한 위험이 제도적으로 완전히 방지되지 않고 있으며, 여전히 많은 무주택자들이 고위험 전세시장에 노출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또한 정부의 정책 대응은 항상 사후적이며, 단기적인 대책 위주로 머무르고 있습니다. 보증보험 제도의 미비, 전세대출 보증 기준의 완화, 임대차 3 법의 부작용 등은 오히려 시장의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으며, 이는 전세제도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있습니다.
전세를 감당하지 못한 계층은 결국 월세 시장으로 이동하게 되고, 고정적인 임대료를 지출하면서 자산 형성의 기회를 점점 잃어가게 됩니다. 자산이 없는 세입자들은 매년 오른 임대료에 고통받고, 자산이 있는 임대인은 이를 기반으로 더 많은 부를 축적하는 구조가 반복됩니다. 이처럼 전세시장은 단순한 주거 수단이 아닌, 자산 불평등을 강화하는 메커니즘으로 작용하고 있으며, 장기적으로는 사회 전체의 계층 고착화를 부추기고 있습니다.
결론
전세제도는 본래 무주택자에게 주거 안정을 제공하기 위한 수단이었지만, 현재는 오히려 자산 격차와 계층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역설적인 시스템으로 변질되고 있습니다.
- ✅ 고전세금 구조는 자산가에게 더 많은 수익 기회를 제공하고, 무주택자는 더 깊은 월세 의존으로 내몰립니다.
- ✅ 세대 간 경제력 격차는 전세 접근성에 따른 자산 형성의 차이로 더욱 확대되고 있습니다.
- ✅ 전세시장의 구조적 위험은 깡통전세 등 실질적 자산 손실로 이어지며, 불평등을 고착화시키고 있습니다.
📌 이제는 전세제도의 근본적인 개편을 통해, 주거 안정과 자산 형성의 공정한 기회를 회복해야 할 때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불평등의 구조는 세대를 넘어 더 깊게 우리 사회를 잠식할 것입니다.